
지난 9일 토고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을 위해 앙골라 북부 국경도시 카빈다에서 수도 루안다로 이동하던 도중 무력단체의 무차별적인 총격을 받아 버스 기사와 미디어 담당관, 코치가 사망했고, 골키퍼 코조비 오빌랄레가 심각한 상태에 있는 등 축구계를 다시 한 번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토고의 대표 공격수 아데바요르는 “동료가 눈앞에서 총을 맞고 울부짖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누구도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내 생애 최악의 순간”이라고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토고 사태를 통해 그간 축구계에 일어났던 아픈 기억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 뮌헨 참사
1958년 2월 6일 발생한 뮌헨 참사는 현재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팬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기억이다.
뮌헨 참사는 서독 뮌헨의 뮌헨-리엄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 실패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다.
‘버스비 세대’로 불리던 맨유는 유고슬라비아 클럽 츠르베나 즈베츠다와의 유러피언컵 원정 경기를 마쳤다.
맨체스터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재급유를 위해 뮌헨에 들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당시 항공 여행은 매우 위험하여 잘 이용하지 않았지만, 맨유는 국내 리그 경기를 주말에 치르고 유러피언컵 경기를 주중에 펼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항공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뮌헨에서 급유를 마치고 출발하기 위해 이륙을 시도하던 전세기는 엔진의 불규칙한 회전으로 인한 이륙 실패로 공항을 둘러싼 담장에 부딪힌 다음, 주인없는 민가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44명의 탑승객 가운데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일곱 명의 맨유 선수들이 사고로 사망했고, 조니 베리와 재키 블랜치플라워 등은 사고 인한 후유증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은퇴하고 말았다.
선수들을 잃은 충격에 클럽이 해산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초라해진 맨유는 사고 이후 리그에서 단 한 경기만을 승리했다. 이로 인해 우승에 도전하던 팀은 리그 9위까지 떨어지는 참담한 시즌을 보냈다.
■ 수페르가 비극
수페르가의 비극은 이탈리아 축구의 20세기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다.
1949년 5월 4일에 발생한 수페르가의 비극은 당시 이탈리아 축구의 최강자 토리노의 운명을 더 나아가 이탈리아 축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토리노는 1942년 위대한 미드필더 발렌티노 마쫄라를 앞세워 리보르노를 제치고 처음으로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토리노 시대’를 열었다.
승승장구하던 토리노의 전성기는 47-48시즌이었다. 40경기에서 29승 7무 4패라는 성적을 거두었는데, 2위 AC밀란과의 승점 차가 무려 16점이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역대 최다 승점 차 우승으로 남아있고, 한 시즌 최다골 기록도 이 당시 기록한 토리노의 125골이었다. 말 그대로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였다.
스쿠데토 5연패를 노리던 토리노는 34라운드까지 정상에 올라있어 5연패가 눈앞에 다가온 듯 보였지만, 운명의 사건은 그순간 발생한다.
34라운드 경기를 마치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날아가 벤피카와 친선 경기를 가진 뒤 토리노는 다시 토리노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1949년 5월 4일 오후 5시 5분. 토리노 근교의 수페르가 언덕을 지나던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비행기에는 토리노의 선수들이 타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토리노는 주축 선수 18명은 물론, 감독 레슬리에 리에베슬레이(Leslie Lievesley)를 포함한 코치진 전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탈리아 축구계의 큰 재앙이 되고 말았다.
위대한 토리노의 멤버들은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이었다.
이 사건 이후 토리노는 더 이상 강팀이 아니었다. 다음 시즌 리그 6위로 추락한 토리노는 그 다음해 세리에B로 강등되는 수모까지 겪게 되며 이탈리아 축구 변방으로 몰락하고 만다.
현재도 토리노는 세리에A와 B를 오가는 평범한 클럽이 됐다.
결과론적이지만 수페르가의 비극만 없었다면 토리노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 헤이젤과 힐즈브러 참사
팬들의 사고로 안타까웠던 두 참사는 모두 리버풀과 연관이 있다.
리버풀은 팬들이 가장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클럽이다.
헤이젤 참사는 1985년 유럽 챔피언스컵 결승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경기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팬들의 충돌로 일어난 참사다.
분데스리가가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잉글랜드리그와 이탈리아리그의 양강구도의 시점 두 나라의 자존심을 건 챔피언스컵 결승전이 치러지게 됐다.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싶었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확장되던 응원조직 ‘울트라’의 미묘한 라이벌 의식이 생겨나고 있었다.
게다가 1984년 리버풀 팬들이 이탈리아 팬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 등 훌리건들은 결승전을 벼루고 있었다.
헤이젤 스타디움으로 모여든 훌리건과 울트라의 응원 속에 진행되던 경기는 리버풀의 훌리건들이 중립지역으로 들어가 울트라는 물론 일반 관중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경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난동을 피하기 위해 관중들이출구로 몰리면서 7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무너졌고, 사람들이 깔리면서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으며, 벨기에 경찰에 의해 잉글랜드 훌리건 29명이 구속되는 유례없는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UEFA는 잉글랜드의 모든 프로팀들을 UEFA가 주최하는 모든대회 5년간 출전금지, 그리고 리버풀은 7년간 출전 금지를 당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몰락을 가져왔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인 힐스브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에 있는 힐즈브러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96명의 팬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이 벌어지던 힐즈브러 스타디움의 좁은 공간에 25,000여 명의 관중이 몰리면서 킥오프 이후 96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의 모든 스타디움이 좌석 형태로 바뀌고 보호 철망을 철거하는 계기가 됐다.
신석주 기자(vision007@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