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원용성 감독이 축구인들에게 남긴 생전의 모습은 정정당당 한 모습, 바로 그 것이었다.

 선수에서 심판으로. 다시 행정요원에서 그리고 일선 고교 지도자로. 얼핏 듣고 보기에도 변화무쌍 하나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불꽃같은 열정을 지닌 영원한 축구인이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 리그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협회와 고교 지도자들이 치열하고도 열띤 공방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리그제 전면 실시에 대해 반발하며 전국에서 모여든 학부모들과 고교 지도자들이 농성을 벌이던 협회 로비에 원용성 감독이 고교 지도자들이 밝힌 성명서를 들고 간이 연단에 올라섰다. 그의 얼굴은 언뜻 보기에도 푸석푸석했고 병색도 완연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원용성 감독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어조도 분명했다.

  원 감독은 10여 분간이나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원래의 성명서에는 ‘리그제를 3년간 유예하라’고 적혀 있었으나 원용성 감독은 ‘리그제를 완전 철폐 하라’고 고쳐 읽었다.

  성명서 낭독을 다 마친 얼굴에는 보람과 회한이 교차하는 만감이 어려 있었다.
 
 사실 고 원용성 감독은 협회 안에 지인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워낙 성품이 온화하고 친밀감이 높고 언변도 구수하며, 축구에 대해 두루두루 해박한 지식, 또 심판으로서 지닌 풍부하고 다양한 현장경험 등을 감안하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능력 있는 축구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원 감독이었기에 지도자들과 학부모들의 맨 앞에 서서 협회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낭독했다는 것은 엄청난 놀라운 변화였고 크게 놀랄만한 뉴스였다.

  지난 12월 29일은 동장군이 지닌 자신의 매서운 능력을 과시라도 하듯 살을 얼리는 맵고 찬 칼바람이 기승을 부린 날씨였다. 눈발이 하얀 색종이처럼 날리는 날씨 속에서 문광부로 향하는 대열의 맨 앞에 원용성 감독이 자리했다.

  다시 길거리에서 한참이나 기다린 끝에 구성된 문광부 항의방문단도 원용성 감독이 주도했다. 논리 정연한 언변을 지닌 원 감독의 노도와 같은 질타와 지적에 문광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문광부 항의 방문의 현장을 취재한 본사 기자의 수첩엔 고원용성 감독 생전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가 노도와 같이 문광부 관계자들을 질타했던 한 대목은 듣고 읽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우리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진 고교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면서 당신들의 입에서 어떻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말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것만은…’
 
  고 원용성 감독은 리그제 논란과 혼란의 희생양이 분명하다.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의 죽음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혹자는 지병이 사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의료사고라는 설도 나돌기도 하나 그 긴 시간을 노상에서 강추위에 떨고, 항의 방문을 주도하면서 2시간이나 열변을 토하는 와중에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건강에 무리가 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 원용성 감독은 불꽃과 같이 살다가 불꽃같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그런 원 감독이기에 이승에 원망을 남기거나 한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협회와 축구인들은 리그제를 시행하거나 또는, 유예하거나 철폐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더라도 고 원용성 감독의 영전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할 것 같은 상념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고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축구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녀에게 모든 축구인들이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 드리며 삼가 고인의 안식과 영생을 빕니다. 

김영근 기자(ceo@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