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고 없이 임기 마쳐 행복...” 인터뷰 도중 눈시울 붉히기도...


2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있었던 2009년 정기 대의원 총회는 16년 동안 한국축구의 수장으로 있었던 정몽준 회장에게 있어 현직 축구협회장으로서는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다.
 
  정 회장은 역대 회장들 중 최장 기간인 16년간 축구협회를 이끄는 동안 축구의 질적, 양적 발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의원 총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정 회장은 대의원 총회가 잠시 정회되는 동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2살의 나이에 축구협회장직을 처음 맡아 어느덧 50대 중반이 지났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축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16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임기를 마친 것에 대해 행복하다. 이제야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퇴임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살짝 눈시울을 밝혔다.
 
  정 회장은 “대표팀 감독도 어려운 자리였지만 축구협회장 자리도 어려운 자리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더라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했다. 여러분(기자)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고 웃으며 얘기한 후 ‘도하의 기적’으로 얘기되는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하프타임 때 당시 김호 감독에게 구둣발로 얼굴을 채여 피를 흘리며 후반 경기를 뛰게 된 일화를 털어놓으며 “홍명보 같은 선수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축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까지 FIFA 부회장으로 계속 활동하게 되는 정 회장은 “15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데 남은 임기 동안 세계 축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지만 국내에서 공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FIFA 회의와 주요 국제 경기 참석이 힘들다. 어렵지만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뒤 “FIFA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다면 도전할 것이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FIFA 본부가 취리히에 있기 때문에 국내에는 체류가 불가능하다. 17대 국회에서 국회 출석율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 겸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사상 첫 명예회장으로 남게 된 정 회장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보니까 비난을 위한 비난을 받아야 할 때 가슴이 아팠다”라며 지난 고충을 토로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는 한 기자의 말에 “16년 동안 했는데 감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도 이상한 것이다”라고 대답한 정 회장은 “4년 전 축구협회가 국정감사 대상에 올랐을 때도 그만두려 했었다. 내가 봐도 내 스스로가 나쁘다고 느낄 정도로 TV에서 나를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표현했었는데 같이 TV를 보던 집사람이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이 월드컵 유치를 하려한다는 얘기에 대해서 정 회장은 “우리와 일본은 스포츠에 있어서 항상 경쟁하는 관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공동 개최를 선언하는 등 2018년에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나라는 많다”고 말한 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앞두고 전 FIFA 회장인 아벨란제는 ‘공동개최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고, 일본 조직위원장도 발표 하루 전까지만 해도 공동개최문제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FIFA에서도 ‘공동개최는 마지막이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후 유로컵 등에서 공동 개최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FIFA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은 “월드컵 본선에 6번 연속 진출한 나라는 우리를 포함해 6개국 밖에 되지 않는다. 7회 연속 본선에 오르게 된다면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말한 후 “대진 추첨이 중요한데 사실 굉장히 떨린다. 심판 문제도 중요한데 2002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에서 주심이 독일계 스위스인으로 배정돼 제프 블라터 부회장에게 크게 항의를 했었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8강 때 심판판정에 문제가 있어 당시 이회택 단장 이름으로 AFC에 항의 서한을 제출했었는데 일본과의 3, 4위전을 할 때 또 그 심판이 주심으로 배정됐다”며 말한 후 “최소한의 불리함이라도 당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임기 중 가장 아쉬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아테네 올림픽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게 패한 것을 꼽았다. 정 회장은 “파라과이만 이기면 4강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붙어서 더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었다. 당시 히딩크가 이영표와 박지성을 보내주지 않았다. 내가 만나서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히딩크 얘기가 나오자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맞대결을 앞두고 먼저 연습을 하던 네덜란드 선수들이 10분, 20분이 지나도 경기장에서 나올 생각을 안해 우리 선수들은 사이드라인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히딩크가 미안하다며 나중에 말하기를 ‘의도적으로 파울을 했다. 그 시간동안 강하게 슈팅하라고 하면서 한국선수들의 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하더라”며 그와 관련된 일화를 털어놓았다.
 
  협회장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경험을 묻자 정 회장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두 경기를 마치고 경질됐는데, 나도 기술위원회로부터 나중에 통지를 받았다.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술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이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 “축구협회에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체육계에 몸담을 생각이 없다”라고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조기 축구하다가 발목을 다친 지 3주가 넘었는데 다시 축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재활하려고 노력중이다”고 말한 정 회장은 “허정무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하고도 8강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 때의 불운도 다 좋은 운으로 돌아와서 잘 될 것”이라며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한편 “다가오는 이란전에서도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신필중 기자 (pjshin@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