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협의회, “부경고 이차만 감독은 검사들에게 심판을 부탁하라”


전국체전에서 심판들 실력 행사에 경기 40분 가량 지연

  전국 체전 축구경기에 배정된 아마 심판들이 집단적으로 경기를 보이콧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심판들의 권익단체인 전국심판협의회(회장 윤석빈)집행부가 보이콧 사태를 현장에서 주도했다.

  심판협의회 집행부는 10월7일 오전 11시50분 부경고와 정명고의 경기가 벌어지기 직전, 본부석 반대편 중앙지점에 ‘검찰에 판정의 수사를 의뢰한 부경고 이차만 감독은 검찰에게 심판을 부탁하라’는 문구가 쓰인 플랜카드를 붙이고 자신들의 가슴에도 ‘판정 존중’이라고 쓰인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 진행을 거부하는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결국 부경고와 정명고의 경기는 약38분이 지연되고, 부산시축구협회, 부경고 관계자와 학부모들이 경기장에 몰려 들어오면서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끝내 경찰까지 출동하는 불상사로 이어졌다.

  한국축구 75년 사상 최초로 일어난 사태는 이차만 감독이 일선 심판을 검찰에 진정하고, 부산지검이 제주 백록기 대회에 투입됐던 일선 심판 2명을 연이어 소환, 조사한 사실을 본지가 특종 보도하면서 전 축구계에 알려졌고 충격과 반발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일선 심판들이 고교 경기를 앞두고 보이콧을 선언하고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것 그 자체도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더욱 충격적인 대목은 ‘심판협의회가 부경고의 경기를 앞두고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계획과 의지를 최창선 심판위원장에게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대축 수뇌부와 최창선 심판위원장 등은 사태 수습에 별다른 힘을 쏟지 않고 수수방관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축 상벌위의 무능과 무소신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특히 상벌위가 정종선 언남고 감독을 중징계를 할 당시 드러냈던 ‘번개 불에 콩 구어 먹기식’의 신속한 형태와는 전혀 다르게 매사에 소걸음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징계 당사자가 한명인지 두 명인지 조차도 모르면서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또 단수의 징계 대상자로부터 소명을 듣는 순간, 복수의 징계 대상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상벌위의 안이한 업무 태도와 무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더구나 검찰에 진정한 인사가 누구인지 부산지검에 문의 전화 한통만이라도 했었더라면 상벌위의 위상추락도 막고, 심판협의회의 퇴로까지도 열어줄 수 있었을 것이며, 또 보이콧 파문도 사전에 예방하거나 극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허탈감까지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다.       


일선 심판들, 대축의 무소신, 심판위원장 무능이 사태를 더 악화시켜
 
  한국 축구사상 최초의 보이콧 사태를 주도한 전국 심판협의회 윤석빈 회장으로부터 사태의 전후 사정을 둘러싼 생생한 증언을 들어본다. 

  윤 회장은 최창선 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만에 하나, 대축 상벌위가 이차만 감독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일선 심판들은 어떤 형태로 든 체전에 들어가기 직전, 집단적인 의사 표현과 함께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가겠다”는 분명한 각오와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상벌위는 일선 심판을 검찰에 진정한 이차만 감독을 불러 소명을 듣고 이차만 감독을 징계하려 했으나, 부산지검에 진정을 냈던 인사가 이차만 감독 한 명이 아니라 또 한명의 진정인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김 모 씨의 소명을 추가로 듣는 기회에 상벌을 하자는 견해가 비등해지자 상벌위의 징계를 연기하고 말았다.

  윤 회장은 상벌위가 복수의 대상자가 나타나면서 차기에서 다루기로 했다는 소식에 분기탱천 하는 협의회 주축 인사들을 일단 진정시켜 놓고 최 위원장과 다시 통화를 했다.
 
  최 위원장은 ‘일선 심판들이 체전 보이콧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의지를 재확인 한 후 ‘“ 판들이 꼭 그렇게 해야겠다면 할 수 없다. 다만 좀 더 좋은 방안으로 이끌어 나가도록 노력하자”며 동조에 가까운 견해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창선 심판위원장은 통화를 마친 10분 후, 전화를 걸어 “대축 수뇌부가 보이콧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절대로 어떤 의사 표현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종전의 태도를 뒤집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윤 회장은 정색하며 “더 이상 위원장과 대화 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끓었다.

  윤 회장은 “결국 협의회 집행부는 보이콧의 주장을 담은 플랜카드에 쓸 문안 작성에 들어갔고, 중론을 모아 ‘판정 존중’이라고 쓰인 검은색 리본도 동시에 준비를 하기로 긴급이사회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보이콧 직전의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사태가 이토록 악화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었나

  윤 회장의 굳은 소신을 확인한 최창선 위원장은 바빠졌고 사태 수습을 위해 김대영 부위원장을 광양에 급파했다. 그러나 광양에 도착한 김대영 부위원장까지 협의회의 정체성에 대해 발언한 것이 오해를 낳고 설화가 발생하면서 김 부위원장은 수습은 생각도 못하는 무기력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선 심판들이 실력행사에 들어간 현장에 김대영 심판부위원장이 사태의 추이를 쭉 지켜보고 있기는 했으나 경기장 한켠에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기만 할 정도로 신세가 궁핍해졌다.

  부경고 학부모들이 심판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순간에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현장에 있던 심판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김대영 부위원장이 아니라 대축 이상호 경기국장과 심판?경기 감독관들이었다.

  일선 심판들의 보이콧 사태가 약20분을 넘기면서 경기장은 긴장이 고조됐고 이곳저곳에서 경기장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인사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심판들을 향한 욕설이 거칠어지면서 심판들의 안색도 홍조를 띄기 시작했다.

  특히 심판협의회 수뇌부가 더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부산시축구협회 일부 임원들과 부경고 이차만 감독이 보인 어처구니없는 태도였으며, 전체 심판들의 심사를 더욱 뒤틀리게 만들었고 사태를 더욱 악화국면으로 견인하고 말았다. 

  부경고 이차만 감독은 일선 고참 심판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는 그 순간, 본부석에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이차만 감독을 목격한 협의회 임원들은 분기탱천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심판들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일선 심판들을 검찰에 진정하면서 불미스런 사태를 조성한 당사자가 전혀 딴청을 하면서 본부석에 태연하게 앉아 자신들의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심판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고, 심판협의회 수뇌부도 “사과는 커녕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미소를 흘리며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이상 절대 물러설 수 없다”며 굳은 각오를 다지는 기색들이 완연했다.

  이 때, 심판협의회가 주문한 플랜카드와 리본이 도착했고 일부 심판들이 경기장 정면에 플랜카드를 부착하고 가슴엔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

  벌써 경기가 지연된 시간은 30분에 가까웠고, 부경고와 이차만 감독을 비난하는 플랜카드까지 내걸리자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확 변해 버렸다.

  다시 부산시체육관계자. 부경고 관계자. 학부모들이 우르르 하고 경기장 안으로 몰려들면서 이를 제지하는 광양시 체육 관계자들과 치열한 몸싸움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 순간, 눈길을 잡아끄는 인사는 이상호 협회 경기국장이었다. 경기장 안으로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사들을 육탄으로 막아서며 설득을 하던 이 국장의 가슴에 검은 리본이 부착되어 있었다. 바로 심판들이 가슴에 단 ‘판정 존중’이라는 주장이 쓰인 리본이었다.

  이상호 국장 가슴에 그 리본은 달인 것을 본 부산시체육관계자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당신,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심판들을 부추키는 겁니까?” “뭐요, 아니 이것보세요. ‘판정존중’이라는 말이 왜 나쁩니까...’ ‘......’

  다시 부경고 관계자들이 고함과 분통을 터트리며 경기장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하자 경찰들이 강력하게 제지하면서 경기장은 일단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심판들은 아직도 요지부동이었다.

  경기 지연 시간은 35분대에 돌입하고 있었다. 이 때 이상호 국장이 윤석빈 협의회장의 소매를 은근하 게 잡아끌었다. 이 국장의 가슴에 단 ‘판정 존중’이라고 쓴 리본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윤석빈 회장은 놀란 눈으로 이상호 국장의 가슴에 달린 리본을 잠시 바라보다가 픽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국장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자 이제 할 말도 했고, 또 행동도 다 보여줬으니 경기를 시작 합시다” 며 손을 덥석 잡아 이끌었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심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37분 만에 공통적으로 심판들이 웃음을 되찾는 ‘나비 효과’가 경기장 안에 점점 충만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이강욱 주심 등 4심은 ‘판정 존중’의 문구가 적힌 검은 리본을 펄럭이며 선수들의 장비 점검을 서둘렀고, 곧 이어 이강욱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려 퍼지며 부경고와 정명고의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 일선 심판들이 벌인 사상 초유의 보이콧 사태를 현장에서 낱낱이 지켜본 모 원로 축구인은 “이번 사태는 협회 행정 난맥상의 백과사전과 다름없다”면서도 “그렇게 썩었다고 하는 협회 안에도 소신과 책임감, 용기가 있는 사람은 있었구만...” 하며 밝은 표정으로 경기장에 눈길을 돌렸다.

광양에서 - 김영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