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윤석 노매드 아프리카 지사장 인터뷰
혈혈단신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이국으로 가서 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다.
오직 발로 뛰어다니며 낯선 땅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은 이후에 자신을 낳고 길러준 조국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자청한다는 것 또한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윤석(30) 노매드 아프리카 지사장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얼마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Q.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이 아직 많이 생소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데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대학 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각박하게 보였다. 나 스스로나마 여유를 좀 찾아보고자 그 때부터 해외 여행을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여유롭고 즐겁게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외국에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마침 전공도 관광경영학이었기 때문에 민박집을 차려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베트남 쪽으로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 외로 한국 사람이 많아 포기하고 외국어 학원을 다녔다. 강사 중 한 분이 남아공 분이셨는데 그 분의 권유로 남아공에 가게 됐다.
처음부터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에서 내 힘으로 성공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남아공은 나에게 있어 신천지였고, 개척지였다. 군복무 하면서 착실히 모아두었던 2,500만원을 들고 바로 남아공으로 날아갔다.
Q. 아들을 혼자 머나먼 이국에 보냈어야 했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법도 한데?
-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부모님께 손을 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믿어 주셨다.
Q. 이민을 가더라도 한국인들이 많이 가 있는 곳이 생활하는데 보다 편리하지는 않았을까?
- 아까도 얘기했지만 주위의 도움 없이 나 혼자 발로 뛰면서 성공을 해봐야겠다는 강한 도전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남아공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민을 결정할 거였으면 그냥 한국에서 살았을 것이다.
Q. 장교로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을 했어도 구직 등의 문제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보는데?
- 몇몇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는 했었지만 너무 현실에 안주하게 될 것 같고 똑같은 사람, 똑같은 생활이 될 것 같아서 입사하지 않았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로 군복무를 하다보니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는 것에 내가 자신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Q. 부인도 꽤나 힘들었을 것 같은데?
- 약혼만 했을 당시 호주에서 컨벤션 관련 직종에 인턴으로 일하다가 돌아와 대구에서 일을 하다가 내가 남아공에 들어올 때 쯤인 한 달 쯤 뒤에 원하던 직장을 얻어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옮겨 일을 하게 됐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고 통화만 했는데 한 달 전화비만 30만원이 넘게 나오자 결국 한 달 뒤에 원하던 직장생활도 포기하면서 남아공으로 와줘서 많은 힘이 됐다.
결혼 전이었는데도 장인, 장모님이 감사하게도 그 친구(부인)가 나에게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Q. 외지 생활이 아무래도 힘들기 마련일텐데 힘든 적은 없었나?
- 가장 힘들 때가 두 번 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남아공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몸에 피부병이 돋았을 때다. 잘 낫지도 않고 한 번 진료를 받는데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 드는 병원비도 많이 부담되었다.
돈이 거의 바닥났을 때 집을 빌려서 민박집 사업을 했는데 잘되지 않아서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을 때 다행히 큰 행사를 맡아 계속 남아공에 머물 수 있었다.
Q. 한 달이 넘는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가?
- 그동안 서울에만 머물며 영업도 하고, 대학에서 강연도 하고 2년 만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인들도 좀 만나면서 지냈다. 내일(23일)도 제주도에서 행사가 있는데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가봐야겠다. 좀 여유가 생기면 대구에 계신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찾아뵐 생각이다.
Q. 지난 일정 중에 축구협회 국제부를 찾아가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 가이드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 대표팀이 본선에 오르게 되면 선수단의 숙소 등의 문제는 협회와 피파의 공식적인 체계를 따르도록 되어 있어 선수단을 돕지는 못한다. 다만 협회나 OB축구회 등을 통해 남아공에 가는 사람들의 현지에서의 일정에 불편한 점이 없도록 돕고 싶다는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이를 김주성 국제부장(이하 김 부장)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이드가 아닌 코디네이터 역할이다. 코디네이터는 행사 전반을 총괄하면서 남아공 측 고위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차량 등의 제반 여건 등을 일일이 관리하는 일을 한다.
Q. 선뜻 돕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어려울테지만 어떤 지인도 없는 협회에 찾아가 그런 제안을 하는 것도 어려웠을텐데?
- 남아공에 있으면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고위 공직자 분들이 오실 때 돈을 떠나서 항상 도와드려왔는데 이번에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축구를 잘 몰라서 처음에는 김 부장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 미처 몰랐다. 나중에 지인들에게 김 부장을 만났다고 하니 ‘사진이라도 찍지 그랬냐’며 구박을 들었다.(웃음)
Q. 부담이 될 법도 한데?
- 큰 행사를 많이 해봤는데 조금 부담은 되지만 재미가 있었다. 얼마 전에도 안전공사에서 나와 2015년 안전올림픽 개최를 한국에서 하기 위해 홍보활동을 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매우 뿌듯했다.
Q. 월드컵이 1년 정도가 남았는데 남아공 현지의 준비 상황은 어떤가?
- 올 12월까지 모든 경기장을 완공한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다소 미미한 듯싶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관심을 받고 있고, 피파가 주관하는 대회인 만큼 대회를 치르는 데 있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Q. 월드컵에 대한 남아공 국민들의 관심도는 어느 정도인가?
-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 국민들이 보였던 관심에 크게 못미치는 것 같다.
남아공에서는 원래 럭비나 크리켓이 인기있는 스포츠고 축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Q.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타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뤘는데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 아직 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 우선 당분간은 아내와 함께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며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상품으로 개발해야 하므로 바쁘게 보낼 것 같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이 2011년에 성공을 하게 되면 2세 출산 계획과 함께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손꼽힐 만한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모이는 명문 대학 UCT(University of Cape Town)에서 국제학과 석사과정을 밟아 인맥을 쌓아 로비스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48세 쯤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할 생각이다.
신필중 기자 (pjshin@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