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리그제를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협회의 입장은 27일 오전까지는 완강했다. 리그제 유보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 돌덩이처럼 확고하다.
 
  김재한 리그제 추진위원장은 ‘정부와의 기나긴 협의가 끝났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면담에서 재확인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는 협회라고 해도 고교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지고 대학 진학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반적인 예상과 짙은 우려에 대해서는 멈칫하는 기색이었다.

  협회 내부에서도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특히 실무부서의 볼멘 목소리는 경청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의 사정을 탁상 논리로 덮은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리그제 도입을 앞두고 현재 협회 기획실이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기획실의 입장도 축구계 척박한 인프라 사정과 현실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점점 궁색해지고 있다.

  특히 여론 수렴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 축구계 풍토를 조금도 감안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실 리그제 도입은 혁명적인 상황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더구나 급격한 변화를 전제한 정책은 시동을 걸기 전에 충분한 설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순리임에도 협회 내부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외부를 설득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협회 기획실은 충분한 여론 수렴을 고집스럽게 외면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견 수렴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일부 지도자들만 면담했으며 리그제 도입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경청했는지도 의문스럽다. 

  협회는 ‘리그제 TF 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리그제 골격을 짜가는 과정에서 상당수 구성원들이 스스로 탈퇴 의사를 내 비치거나 참여를 극도로 꺼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현실을 도외시 한 명분과 의지만 갖고 거칠 게 밀어 붙이려는 의도에 실망감을 나타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기획실의 정체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명하는 협회 고위 인사들이 많다. 이상론에 치우쳐 있고 굳이 현실을 외면하면서 독주와 독선을 일삼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파다하며 얼마전에 터진 ‘K3 승부조작 사건’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현재 협회가 추진한 리그제 도입은 한국 축구 70년사에 없었던 혁명적인 정책이다. 리그제 도입에 반대하는 일선 고교 지도자들의 반발은 이기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파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지도자들이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사실이다.

  학원 축구의 현실은 빈익빈 부익분 현상이 분명해지고 있다. 선수가 몰리는 일부 고교를 제외하고는 지도자들의 처지는 점점 궁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리그에 참여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선수층이 빈약한 것도 실제 상황이다.

  현재 고교 지도자 중 75% 이상이 계약 일용직. 학교와의 계약 기간도 거의가 1년이 대세다. 이런 지도자들에게 전국 대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특히 전국대회 입상은 로또는 아니겠으나 자신과 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찬스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당수 지도자들은 전국대회 우승을 1년 농사로 인식하고 있으며 결국 모든 것을 걸고 올인 했던 셈이다.

  내년에 리그제가 시행된다면 우승팀은 몇 팀이나 나올까. 바보스런 질문이지만 그 밑바탕에 깔겨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속사정을 감안한다면 일선 지도자들에게 리그제 반대에 나서지 말라고 말릴 수만도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덧붙여 협회가 리그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지도자들이 처한 이런 실태에 대해 어떤 비전을 제시했으며 어떠한 대안을 지세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축구 선진국은 이미 40여년전에 리그를 도입한 것이 사실이며 이웃 국가인 일본은 이미 지난 87년부터 리그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본과 우리 실정은 천양지차인 것이 사실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에서도 리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축구 명문고의 목소리는 리그제 폐지 성향에 가깝다. ‘리그 도입이 일본 축구의 정신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는 비판을 강력하게 제기하며 ‘토너먼트 대회가 일본 축구의 대안이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특정 명문고의 목소일 뿐 아직은 소수의 항변이다.

  이 시점에서 협회는 진중하게 절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전국 대회를 근거로 한 리그와 토너먼트를 혼합한 대안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조짐도 없지 않다. 김재한 부회장은 26일 오전 기자와 만나 “지도자들의 궁핍하고 척박한 위상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안을 놓고 교육부와 협의 중이며 이 안이 실현되면 처우가 크게 개선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퍽 다행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크다. 진작부터 협회가 이런 열린 자세로 현안에 대해 왜 일선 지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김영근 기자(ceo@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