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패배 보다 더 뼈아픈 것은 신선한 이미지 상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겨준다고 해도 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26일 오후, 이용수 후보가 대학연맹 회장선거에 출마했다가 9표 차이로 낙선하는 현장을 지켜본 모 축구 원로가 진한 한숨을 밑바탕에 깔고 내뱉은 독백이다.

  사실 허승표 캠프 안에서 각 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하려거나 이미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중 가장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이 이용수 후보였다. 그런 이용수씨가 변석화 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낙선하자 허승표 캠프를 지지하는 축구인들의 눈길은 점점 촉촉해지고 있다.

  결코 허승표 이사장을 지지하는 축구인들이 아니라고 해도 안타까운 마음은 거의 비슷한 기색을 보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사실 인간사의 속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두 번째 계단을 오르기가 더 쉽다는 철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축구인들이라면 이런 감정을 선 듯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승표 이사장이 연맹 회장 선거에서 ‘최소한의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은 거의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대학연맹에서 이용수 후보가 낙선했고, 고교연맹은 박병주 후보의 등록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허 이사장이 딛고 오르려던 디딤돌 확보는 고사하고 그 자리에 가시발길이 펼쳐진 형상으로 현실이 변해버렸다.

  협회 산하 7개 연맹에서 최소한 한 곳이라도 건지겠다는 계획도 난감하게 됐다. 실업연맹과 여자연맹은 정몽준 회장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프로연맹도 우호세력으로 보기에는 미덥지 않다.
 
  이제 허승표씨가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은 각 시. 도 협회뿐이며 굳이 위안거리를 찾아본다면 부산시에서 백현식 회장이 수성에 성공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 시. 도 협회의 사정이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이미 대전의 임용혁 회장이 5년 임기를 시작했고, 경남 전형두 회장은 4선에 성공했다. 이들이 경기인 출신이긴 하지만 적극적인 지지자라고 분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허 이사장의 참모진에 대한 비판도 비등하다. 허 이사장의 절대적인 지지자로 알려진 백현식 회장까지도 "허 이사장 주변의 참모들을 대폭 정비하고 조직도 크게 보강해야 한다"고 강력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연맹 총회에 참석했던 허승표 지지자들의 입에서도 부산시 백현식 회장의 이런 지적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어떻게 저런 인사들을 참모로 썼단 말인가"하는 것이 공통적인 정서였으며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이용수 후보의 패배도 그런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용수 후보의 장점은 신선함이 가장 큰 무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을 통해 쌓은 친근감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에서 근거 없는 기대감까지도 충만하게 만들어 내며 단숨에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용수 후보의 상큼한 이미지와 갖가지 장점 등은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인 결산 총회에서부터 이미 먹칠이 시작됐고 생채기도 잔뜩 났다. 그런 생채기를 낸 인사들은 누구일까. 스스로 이용수를 지지한다고 나선 인사들이였다.

  대학 연맹 결산 총회의 분위기는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완장을 찬 것으로 비쳐질 정도로 그들은 스승과 선. 후배도 안중에 없었고, 매사에 논리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면서 어설픈 선동을 벌이는 모습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이용수 후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대의원들이 이 후보의 캠프에 소속한 인사들인지 아니면 스스로 지지를 선언한 대의원들인지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남는다. 하지만 제아무리 정치판에서 자주 악용되는 필립 버스터(미국 국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계속 요청하면서 원만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정치적 행위를 표현한 명사)를 흉내 낸 행위였다고 이해한다고 해도 너무 자주 반복하면 식상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그런 행위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 불리 할 것인가를 감안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결코 지지자의 모습이 아니라 방해꾼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 다.

  더구나 대학 지도자 신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공개된 장소의 행위에 대해서는 더더욱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성공을 위해서도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혹자는 총회를 ‘민주주의의 꽃’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총회가 민주주의의 꽃이기는 해도 비민주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사실 다수결도 민주주의의 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았으며, 군사정권의 압제의 도구는 거의 다수결이 흉기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대학 연맹 총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소수 인사들은 신성한 총회를 더럽혔고 총회에 참석한 인사들을 모욕했으며 총회를 선전장으로 타락시켰다.
 
  총회 장면 하나하나를 반추해보기조차 역겨울 정도였다. 대학이 ‘지성인의 전당’ 이라는 말조차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총회에 대의원으로 참석하였거나 현장에서 지켜본 목격자들에게 남긴 이미지는 매사에 끈적거리는 집요함과 끝없는 억지뿐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였다.

  허승표 이사장 캠프는 대학 연맹 선거에서 ‘최소한 5표의 유동 표가 어설픈 지지자들 때문에 돌아섰다’ 는 지적과 분석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사실 대학연맹 회장 선거는  한 표가 아쉬운 박빙의 승부였다는 점에서 ‘그들 때문에 5표 정도가 돌아섰다’는 지적이 뼈아픈 지적이긴 하지만 실제 상황이 주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덧붙여 ‘맛이 없다면 떫지라도 말아야 한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생생한 민의의 현장이기도 했다.

김영근 기자(ceo@weekls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