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기며 재미있는 축구가 더 강하다!!
지난 23일 경남 합천군 군민운동장에서 경기종료를 알리는 긴 휘슬이 울렸다. 흰색바탕에 검은색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낭자들이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벤치에서 이 모습을 보던 한 남자도 흐뭇한 미소를 띠며 대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바로 이성균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이하 수원FMC) 감독이었다.
수원FMC가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열린 2010 전국여자선수권대회 실업부 결승전에서 전가을, 조아라의 연속골로 서울시청을 2:1로 제압하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번 우승은 창단 3년 만에 첫 우승이기도 하거니와 2008년과 2009년 모두 최하위를 기록한 수원FMC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하지만 새삼 깜짝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올 시즌 WK리그에서 수원FMC는 전반기를 1위로 마치고 현재 2위를 달리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FMC의 이런 놀라운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지난해 11월에 부임한 이성균 감독이 있었다.
이 감독은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이 상대팀보다 한발 더 뛰면서 열심히 경기에 임하다보니 우승까지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이 집중력으로 이어지면서 상대를 압도한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모든 찬사를 돌렸다.
사실 이 감독은 수원FMC로 부임하면서 여자축구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이전까지 수원고의 지휘봉을 11년간 잡으면서 전국고교대회 2회 우승을 시키는 등 남자팀 지도자로만 활동했다.
“처음에는 여자선수들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도 어떤 운동을 어디까지 시켜야 되는지도 몰라 어려움이 많았으나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서서히 신뢰가 형성되면서 서로간의 벽을 허물 수 있었어요. 남자선수들과는 달리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이 감독은 WK리그 전반기 1위로 마친데 이어 2010 전국여자선수권대회 우승까지 꼴찌반란의 대명사가 된 수원FMC의 이런 놀라운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선수들의 의욕과 자신감 그리고 구단의 지원을 꼽았다.
“이번 시즌을 통해 선수들의 의욕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서면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돌아와요. 그러자 최선을 다한 경기에서 꼴찌 팀이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다보니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집중력이 더욱 높아져 승리를 하는 것 같아요. 또한 선수들과 코칭스텝의 노력뿐만 아니라 구단 프런트의 아낌없는 지원까지 더해져 3박자가 조화를 잘 이뤄 팀 전체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성적도 올라간 것 같아요.”
이 감독이 수원FMC에서 하고자 하는 축구는 어떤 축구일까. “저는 뻥 축구가 아닌 수비에서 미들필드를 거쳐 공격까지 이어지는 섬세한 축구를 하고 싶어요. 우리 팀은 조소현 선수를 중심으로 미들필드진이 상당히 좋거든요. 거기에 심소연 선수를 축으로 하는 여자 실업팀 최강 포백이 후방을 견고하게 지키고 있고 최전방에서는 스피드와 돌파가 좋은 전가을 선수 등 높은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들이 포진돼 있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전술을 편하게 펼칠 수 있어요.”
또한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집중력을 강조한다. “‘야구에서 타자가 집중력이 좋으면 투수가 던진 공의 실밥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축구도 마찬가지에요. 경기에서 매순간 집중력을 발휘하면 다치지도 않고 능률도 오르게 되죠. 거기에 더해 어떤 주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생각을 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면 어느 순간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열정, 섬세한 축구, 높은 집중력 등 중요한 요소들이 많지만 이 감독이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축구 자체를 즐길 줄 아는가이다.
“이것은 저의 축구철학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인데 코칭스텝들과 선수들이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겁니다. 훈련과 연습은 몰론 시합에 나가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성적 또한 오를 수 없죠. 즐길 줄 알아야 축구가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저와 우리 팀 선수들이 일찍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축구를 재미있어 하고 즐길 줄 안다는 공통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팀 분위기가 좋아지고 이렇게 성적도 같이 덩달아 올랐고요.”
여자축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이 감독은 여자 유소년 선수들의 육성과 활성화를 제일 먼저 이야기했다.
“우선 여자축구가 발전할 수 있으려면 인적자원 즉 선수들이 풍부해야 되요. 그러기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 유소년들을 많이 발굴, 육성해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놓은 뒤 점차 중, 고, 대학교 팀들 수도 늘리고 실업팀 수도 확장하면서 여자축구 활성화를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의 올해 목표는 크고 원대했다. “지금 리그 2위를 달리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데 끝까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10월에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경기도대표로 출전하는 만큼 금메달을 목에 걸어 경기도의 위상을 전국에 높이고 더불어 여자축구의 재미를 알리고 싶어요.”
끝으로 이 감독은 여자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U-20 여자대표선수들이 선전을 하면서 여자축구가 관심을 받고 있는데 TV로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으니까 경기장을 직접 찾아주셔서 즐거운 여자축구의 묘미에 흠뻑 취해보시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박수 한번 쳐주시면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좋은 경기로 보답할 것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휴가 중인 주장 박현희 선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 감독은 자연스럽게 박 선수의 쌍둥이 조카들 안부도 물으면서 다정스럽게 전화통화를 이어갔다. 인터뷰 내내 자신에게는 새로운 딸 23명이 생겼다며 연신 웃음을 띠며 이야기 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감독과 선수가 아닌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대화였다. 여기서 수원FMC의 돌풍이 우연이 아닌 이 감독과 23명의 선수들이 신뢰를 통해 함께 만들어 낸 재미있는 축구의 결과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열악한 여건과 환경 속에서 축구를 즐기며 재미있는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감독과 수원FMC 선수들이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금의 돌풍을 리그 첫 우승이라는 태풍으로 끝을 맺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양문철 기자(ymch@weeklysoccer.co.kr)
사진 = 고재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