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날이 이번 시즌 부진을 거듭하면서 웽거 감독은 점점 압박을 받고 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아스날이 빅4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망주 위주의 정책을 버리고 거물급 영입에 돈을 써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도 웽거 감독은 비판하는 이들을 실망시킬 여지가 많다.
아르센 웽거 감독은 두 가지 이유에서 거물급 영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가 파악하고 있는 현 선수진의 약점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며 둘째는 장기적인 측면, 특히 현재 범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아스날이라는 구단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 웽거 감독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경영진도 그를 신뢰하고 있다. 1996년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웽거 감독은 고집불통의 구두쇠에 허황된 꿈을 쫓는 몽상가로 비판을 받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흔들리지 않고 클럽의 미래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이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위기 속에서 아스날을 구할 것이다. 특정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겨울 이적 시장에서 한두 명 정도의 선수를 영입할 수는 있겠지만 웽거 감독은 여전히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웽거 감독은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번에 걸쳐 현 경제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축구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실제로 최근 많은 구단들이 수익은 줄고 빚은 늘어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웽거 감독은 아스날의 운영 방식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구단을 든든하게 지탱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의 철학은 분수에 맞게 돈을 쓴다는 간단한 것이다.
웽거 감독은 구단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구단은 현재 매우 건강한 상태이다. 아스날은 스스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은행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수입과 지출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기에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자신감을 밝혔다.
블레터 FIFA 회장도 잉글랜드 구단들의 심각한 부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미들스브로의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프리미어 리그가 자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구단들이 이적료와 주급의 거품을 빼고 입장권을 현실적인 가격으로 조정하지 않는다면 리그가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구단들의 관중수가 줄면서 입장권 할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구장에 들어선 가게들의 수입이 줄고 있다. 유니폼을 비롯한 구단 용품의 판매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시즌권을 나누어 쓰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웨스트햄과 포츠머스는 선수들을 팔아 치우고 있으며 구단주들은 구단을 팔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상태이다. 뉴캐슬의 구단주는 구매자를 찾지 못해 매각을 포기한 상태이며 로만 아브라모비치마저 자신의 요트와 첼시 구단 중 하나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러시아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 15명의 스카우트를 해고했음에도 스콜라리 감독은 이적자금이 부족하여 고민 중이다. 리버풀은 350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의 상환을 6개월 늦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구장 신축계획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이다.
오일머니의 축복을 받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는 안전지대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구단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 상태이다. 선수들의 주급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측면에는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료가 크게 일조했다. 한껏 부풀려진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료는 현재 한 시즌에 적어도 한 구단당 3500만 파운드의 현금을 안겨준다.
하지만 2010년에 다시 협상이 이루어지고 거품이 빠지게 되면 이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많으며 심각한 자금난을 불러오게 된다. 일부 구단에서는 중계권료가 구단 수입의 절반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웽거 감독의 방식이 위기에 처한 구단들을 구할 묘책이 될 수 있을까? 웽거 감독 철학의 핵심은 구단을 회사와 마찬가지로 수입과 지출을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써 자체유지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웽거 감독은 아스날이 새 구장을 지으면서 가해진 경제적 부담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제한된 자금 내에서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의 주급을 조절하고 있으며 지난 12년간 이적 시장에서 꾸준하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아스날은 새로운 구장을 건설했음에도 재정적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일 뿐 아니라 프리미어 리그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웽거 감독은 최근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아스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허황된 꿈을 쫓기보다는 스스로의 발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선수 한 명에 3000~4000만 파운드를 쏟아 붓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면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첼시는 새 구장을 짓지 못하고 있으며 일년에 1억 파운드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 아스날이 첼시를 따라 했다가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구단을 운영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투자를 꺼린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스날의 운영진들은 오랜 고민과 토의를 거쳐 구단이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며 모든 관계자들이 이를 존중하고 이에 따라주고 있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의 발전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것이며 호사가들이 이런저런 이름들을 거론하는 것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지난 9월에 아스날이 발표한 2008-09 시즌의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3670만 파운드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주목할 것은 경기 당일 수입이 9460만 파운드로 지난 시즌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에메리츠 스타디움의 건설이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입증할 뿐 아니라 아스날이 6만개의 좌석을 꾸준히 채울 정도로 좋은 경기를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스날의 경영진은 거듭해서 웽거 감독이 원한다면 충분한 이적 자금이 준비되어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들은 웽거 감독의 판단을 신뢰하며 선수 이적에 관해서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물론 아스날이 구장을 신축하면서 상당한 빚을 안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 구단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1억 3300만 파운드 상당의 은행 대출은 하이버리 구장이 위치했던 땅을 정리하고 재개발하는데 사용됬으며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부지를 매각함으로써 충분히 갚을 수 있다.
둘째로 2억 5000만 파운드의 채권은 에메리츠 스타디움을 건설하기 위해 발행한 것으로 향후 23년간 고정된 금리로 상환될 것이다. 이는 매년 2000만 파운드 정도의 금액인데 새롭게 증축된 구장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
아스날의 운영 방식은 라이벌 팀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된 것이다. 피터 힐우드 회장은 아스날이 계속해서 최고 수준의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스날의 경영진과 웽거 감독은 결코 단기간의 성적을 위해 재정의 균형을 깨뜨리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아스날이 몇 경기 패배했다고 해서 위기론을 떠들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아스날은 이번 시즌 중요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승권에서 멀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세계가 경제위기에 떠는 가운데서도 아스날의 미래는 경기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밝아 보인다.
이주환 기자 (enterdelet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