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축 상벌위, 신속한 징계보다는 심사숙고의 자세가 아쉬워
한국 축구계 지도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육성의 낙후성은 국제적으로도 악명은 매우 높다.
2002한.일 월드컵의 지휘봉을 잡았던 히딩크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좋은 모습 즉, 해피엔딩으로 한국을 떠난 지도자가 거의 없으니 당연하게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한국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크라마도 쓸쓸하게 한국을 떠났다. 사실 제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라고 해도 떠날 때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기자는 축구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히딩크처럼 금의환향을 한 지도자를 국. 내외를 막론하고 듣고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축구인들은 이런 반문에 곧잘 잘 빠진다.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 하는 인사들도 이런 의문을 곧잘 던진다.
지도자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인가. 아니면 육성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도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으나 누가 내 게 묻는다면 난 지체 없이 ‘육성되는 것이다’ 고 단정적으로 대답한다.
히딩크의 사례에서도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감독의 혜안과 선수를 선발하는 자세가 어떻게 되어 있어야 하느냐 하는 대목에서는 반면교사로서 뼈저리게 느껴야 할 대목이 절절하다.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우리는 지도자를 육성하기는커녕 스스로 성장한 지도자도 단 칼에 베어버리는 것이 실상이다.
지난 봄 정종선 감독의 중징계 소식을 들었다. 대학 진학비리 때문이라는 풍문도 파다했다. 정 감독은 대축이 선정한 ‘07년 최고의 고교 팀’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젊은 지도자이면서도 입지적 성향 강하며 신흥 언남고를 고교 정상급으로 끌어올리면서 대축으로부터 자신의 지도력을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정 감독이 일선 지도자로 나선 것은 지난 2001년. 거의 10년 만에 정상급 지도자로 성장하는 능력을 보였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 축구계에는 평생 일선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우승한번 못해보는 지도자가 흔하다. 하기에 ‘우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는 말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 감독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절대 아니다. 다만 대축 상벌위가 단행한 초 스피드적인 징계 형태에 대해서는 짙은 의문을 거둘 수가 없다.
정 감독에 대한 관계당국의 조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당국자의 말은 ‘현재도 조사 중이다’는 것이 공식 답변이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볼 때 상벌위의 신속한 징계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시라도 정종선 감독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징계를 지나치게 서두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우려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만에 하나, 사법당국의 판단이 달라진다면 그 때 상벌위는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피해자를 자처한 학부모의 주장을 무시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파문의 당사자인 모 선수의 빈번한 전학과 그에 따른 행적에 대한 파다한 소문, 덧붙여 모 선수의 후원자를 자처한 모 유명 축구인이 배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특정 팀의 지도자들에게 이런 저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학부모의 주장에 신뢰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특정 조직에 대한 정체성은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의문을 낳고, 끝내는 그 조직의 정체성도 흔들리고 신뢰가 무너지면서 결국 그 조직은 붕괴의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대축 상벌위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자초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와 정종선 감독간의 첨예한 주장이 비등하고, 또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축구장 외적’ 상황에 대해 관계 당국보다 더 먼저, 그것도 아주 신속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서둘렀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결코 축구계와 상벌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대축은 축구인들을 위한 조직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지도자들의 역성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대축에 등록한 축구인이라면 누구도 대축의 결정에 승복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승복의 전제에는 철저한 ‘공정성’이 담보되어 있어야 하며 굳이 따져본다면 ‘신속성’은 ‘공정성’ 보다는 한참 후순위에 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축 상벌위가 정 감독의 징계의 요인으로 삼은 ‘금품수수’의 결론은 피의자 소환권과 조사권을 보유한 관계당국 마저도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두고 조사를 벌였으면서도 결론 도출에 넌더리를 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지 않은가.
상벌위의 성급한 처사를 놓고 당연하게 징계에도 선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아울러 이제는 일선 지도자의 궁핍한 신분에 대한 개선책을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할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전축구계가 함께 일선 지도자들이 학부모의 유혹과 입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덧붙여 대축의 재정과 예산이 지금의 약 20%에 머물렀던 궁색했던 시절에도 일선 지도자의 신분이 오늘처럼 ‘풍전등화’의 처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자 한다.
- 김영근 기자